詩 • 든 • 손

in #steemzzang10 days ago (edited)

주인도 떠난 빈 집
혼자 오랜 세월 버티던 울타리가
다리에 힘을 잃고 주저앉는다

서로 서로 어깨를 꼭 붙이고
팔장을 끼고 서서
한 집의 경계가 되어주던 울타리였다

어쩌다 멧새들이 입방아를 찧기도 하고
작은 나비가 강낭콩꽃에 입을 맞추던 울타리가
혼자도 잘 버틴다고 생각했는데

바위나리꽃이 하얗게 질려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지 않으려 버티던 개나리꽃이
가장 긴 가지를 어린이 보호구역 표지판 기둥에
그 튼튼한 기둥쪽으로 뻗는다

그러나 중심을 잡는 건
기둥이 아니라 뿌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채
봄은 날마다 새옷을 갈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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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끝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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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로 인해 이곳에 집터가 있었구나 알게 돼요.

가끔 그 집에 사시던 분들이 생각납니다.
살구가 익으면 담아다 주시고
능소화 피었다고 알려주시던 분들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