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7(화) 11세기 북송시절의 고구려인식(2)
어제 소개한 [신당서]의 다음 내용을 살펴본다.
당태종 이세민 정관14년(640년) 무렵의 영토 크기에 대한 이야기다.
서쪽으로는 고창高昌을 평정하였으며,
북쪽으로는 음산陰山을 넘고,
서쪽으로는 대막(大漠, 큰 사막)에 닿았다.
땅은 동쪽으로는 바다에 닿고,
서쪽으로는 언기焉耆에 이르며,
남쪽으로는 임주林州의 남쪽 경계를 다하고
북쪽으로는 설연타薛延陀의 경계와 접하였으니,
동서로 구천오백십일(9,511) 리이고,
남북으로 일만 육천구백십팔(16,918) 리였다.
언뜻 봐서 느낌이 없을 수 있는 내용인데.
일단
동서 9,511리 = 2,007.22909km
남북 16,918리 = 6,644.16km 다
대략, 아시아와 중동지역을 포함한 면적이다.
지명들이 나오는데, 다른 곳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남쪽으로는 임주林州의 남쪽 경계를 다하고
라는 부분이 있다.
임주林州는
지도에 표시된 곳이다. 구글지도에 한자를 입력하면
누구나 확인 가능한 곳이다.
'남쪽으로' 라는 방위의 사용이 현재와 다르지만
동북 방향의 영토 끝이 '임주林州' 라고 해석할 수 있다.
왜인가?
바로 그 북쪽에 당시의 '요수'가 흘렀고
요수의 건너편에 고구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나라의 수도가 '장안(=지금의 서안시)였는데
고구려의 서쪽 경계가 저근처에 있었다면
당나라 입장에서
사생결단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입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국사교과서를 철썩같이 믿고 있는 분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해석이지만
기록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나중에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나서,
하늘에 감사의 제사를 지냈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