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지금이라도 카미유 클로델을 알게 되어...
세상이 좋아지기는 했다.
별별것을 다 알게 되는 세상이니 그렇다.
몰라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데 알게 되면 이래도 되니 싶은 게 많다.
인터넷 덕분에 그렇다.
인터넷이 아니면 대부분이 모를, 적어도 나는 모르고 살 일들을 너무, 아니 많이 알게 된다.
거시기가 거시기한테 한테 충성을 혈서로 맹세한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을 거고 원조 거시기였는데
오히려 거시기를 때려잡겠다고 한 것도 그렇고 사람의 한평생에 공과 실을 고스란히 알게 되는 게
이 세상의 이 편한 인터넷 덕분이란 생각이다.
사실 대단한 천재들 중에는 단명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도 나는 몰랐다.
그러나 요즘에서야 알게 되고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다.
그런 인재들이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 좀 더 오래 살며 업적을 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다.
그런데 어제는 맥을 달리 하는 이야기로 카미유끌로델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잠깐 듣고서 그녀의 대해 안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비극의 주인공인 것은 사실이다.
그것도 보호를 해주어야 할 연인과 가족으로부터 배신을 넘어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연인이나 가족은 끝까지 내편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거 같다.
당시의 사회 환경 자체가 조각이라는 예술활동이 여자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거기서 비극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가족이 지켜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다.
카미유 클로델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활동한 프랑스의 천재 조각가라 한다.
오랜 기간 거장 오귀스트 로댕의 조수이자 연인 뮤즈로만 가려져 있었으나
청동과 대리석을 다루는 독창적이고 과감한 천재성을 인정받으며 현대에는
독립된 위대한 예술가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내가 사실 확인을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로댕과의 관계에서 그럴 수 있나 싶다.
연인이라면 오히려 자신보다 더욱 빛나게 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건 못해도 자신의 예술혼의
동반자로 각인시킬 수 없었다는 것이 무척 실망스러워 로댕이 밉다.
클로델의 명예회복은 그의 사후에 카미유 남동생 폴 클로델의 손녀인 전기 작가 렌-마리 파리가
1984년에 출간한 전기와,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1988년 영화 카미유 클로델이 큰 성공을 거두며 시작되었다.
이후의 명예회복 운동이 일어났고 현재는 로댕에서 벗어나 완전히 명예회복이 되었다는 게
천만다행이고 축하를 할 일이다.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 서러도 그의 미술관을 방문하고 싶다.
그녀가 유년 시절을 보낸 프랑스 노장쉬르센에 그녀의 이름을 딴 카미유 클로델 미술관이
설립되었고 프랑스 관광청이 적극 홍보를 하는 거 같다.
30년이나 정신 병원에서 감금되어 지냈다 하니 너무나 안쓰러운 일이다.
영화가 있었다니 찾아본다.
있다, 영화리뷰가 있다.
이것이라도 좀 봐야겠다.
감사합니다.
2026/05/24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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