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6권(2)
제2항 아군의 상황
단기 4283년 11월 말 중공군의 전쟁 개입으로 말미암아 한만 국경으로부터 철수를 개시한 아군은 적의 공격을 지연시키면서 오산 선에서 최후방어선을 형성 1월 15일 철수작전에 종지부를 찍고 반격 작전이 개시되었으며, 2월 21일 미 제8군사령관 리지웨이 중장의 중공군을 죽이고 우리가 살자는 강조 하에 실시된 일대 도살 작전을 전 전선에 걸쳐 적을 구축하면서 3월 14일 서울을 재탈환 백선엽 장군 지휘 하의 제1군단은 3월 16일 감격리에 서울에 입성하였으며, 4월 상순에 38선 일대까지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3월 24일 국련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돌연 현지 정전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고 성명을 발표하여 각 방면에 큰 파란을 일으켰으며, 국련군의 작전이 결국은 38선을 중심으로 종료될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가운데 전략적인 사명을 띠고 진격은 계속되었다. 4월 3일 서부전선에서는 미 제1군단이 대거 38선을 넘고 동부전선에서는 4월 4일 아 제1군단이 간성에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아 제1군단장 김백일 소장은 그보다 일주일 전에 전투지휘중 비행기 사고로 전사하였으며, 4월 6일 제1사단장 백선엽 준장이 군단장으로 영전하게 되어 동부전선의 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서부와 동부 양익의 진출과 아울러 중부 전선에서도 진격이 계속되어 미 제9, 제10군단이 4월 5일에는 맹렬한 포병 지원 하에 춘천 북방에서 소양강을 도하하고 38선 이북의 수개 고지를 점령하였으며, 인제, 양구의 탈환에 이어 4월 18일에는 화천과 화천 저수지를 아 제3군단에 의해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그간 3월 12일 이승만 대통령 각하의 전선 시찰에 이어 국련군 총사령관 맥아더 원수의 내한 일선 방문, 총참모장 정일권 중장의 전선 순시, 3월 11일 미 대통령 특사 루우 소장과 4월 10일 미 육군장관 페이스 장군의 내한과 전선 방문 등으로 아군의 사기는 충천했으며, 멸공의 기치는 자못 높았다. 4월 11일 맥아더 원수의 뒤를 이어 한국전선에서 탁월한 전략적 수완을 발휘한 미 제8군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이 국련군 총사령관에 취임하였으며, 미 제8군사령관으로는 희랍(希臘)에서 용맹을 떨친 밴플리트 중장이 새로 임명되었다. 한편, 한국군에 있어서도 4월 6일 백선엽 장군의 영전에 따라 육군본부 작전교육과장으로 있던 강문봉 준장이 제1사단장으로 전직되었고, 4월 27일 제9사단의 지휘를 최석 준장이 담당하고 장창국 준장과 강형훈 준장이 각각 제1군단과 제3군단의 부군단장으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