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98)

in KWH 한국전쟁사8 days ago (edited)

한편, 1월 22일 신 BULL 선에 배치되어 1월 26일에 이르기까지 제3군단 좌익 후천에서 송계리에 이르는 선상에서 진지 보강에 진력하던 제9사단은 좌익에 배치된 아 제7사단과 미 제7사단의 이러한 상황에 입각하여 2월 2일에 이르는 동안 약간의 변동이 있었다.
1월 26일 제3군단장 유재흥 소장이 지시한 작전계획 즉 장차 군단 진출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각 사단별 수색 공격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제9사단장 김종갑 준장은 예하 제30연대의 1개 대대와 고백규 중령이 지휘하는 사단 예비대인 제29연대로서 1월 28일부터 행동을 개시하게 하였다.
명을 받은 제30연대장 고시복 대령은 제2대대를 수색 공격 제대로 차출하고 동 대대 주 진지 유평(DS9657)~탑거리(DS7523) 간을 제1대대에 인계한 후 1월 28일 07:00부터 행동 개시, 주력은 동일 10:00 정선에 도착하고 제7중대는 동일 11:00 용탄리에 도착하여 각각 사주방어에 임하고 차기 작전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제29연대도 역시 1월 29일 19:00를 기하여 정선 이북 선으로 지향하고 각 대대별로 출발하였다. 이에 따라서 사단 지휘소는 고두암에서 황치리에 이동을 개시, 1월 30일 16:30에 개설하였다.
1월 1일 미명 정선에 도착 완료한 제29연대는 연대장 명에 따라 지휘소를 설치하고 1월 30일 동 연대 선발대로서 당지에 도달한 제3대대를 1월 31일 07:00부터 북진하게 하였으며, 연대 주력과 제30연대 제2대대는 정선과 용담리 간에 배치되어 사단 진출의 엄호 선을 형성하였다. 그 후 제29연대 제3대대는 증원부대로서 동 연대 제6, 제7중대를 수학리에서 배치받고 계속 전진 동일 15:00에 이르러 하진부리에서 소규모적인 적의 저항을 물리치고 동 지점을 탈환하는 동시, 부근에 배치하여 강릉으로부터 횡성에 이르는 접근로를 차단함으로써 제3군단 주력의 진출로를 개척하였다.
또한 제3군단 예비대로 있는 제3사단은 남대리 전투를 대첩한 후 1월 28일에 이르기까지 춘양에서 후방 경계와 부대 정비를 완료하고 1월 29일부터 전방 사단을 지원하기 위하여 이동을 개시하였다.
녹전리에 있는 제23연대는 현 위치에서 제7사단의 후방 지원을 감행하였고 제22연대는 서벽리에서 1월 31일 12:00 고두암에 이동 완료하여 제9사단의 후방 지원을 담당하였고, 2월 2일 10:40에 이르러는 사단 지휘소를 내덕에 이동 개설하였으며, 제18연대와 제23연대를 영월로, 제22연대를 후가로 각각 이동하게 하여 제23, 제22연대는 계속 현 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제18연대는 사단 예비대로 하여 차기 작전을 대비하였다.
제3군단이 영월 지구에서 이러한 작전을 전개하는 동안 송계리에서 동해안 삼척 북방에 이르기까지 송요찬 준장이 지휘하는 수도사단이 배치되어 방어 임무를 수행 중인 제1군단은 1월 22일 이래 방어진지 보강에 열중하였다. 이 지구에 투입된 적은 본 작전이 종료되기까지 본격적인 공세를 취할 수 있는 적의 정규군이 아닌 유격부대이므로 아군의 진지가 붕괴되거나 혹은 적의 대겨침투로 인하여 철수하여야 된다는 상황 변동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단 1개 사단을 가지고 지휘 중인 아 제1군단장 김백일 소장은 어디까지나 인접 제3군단의 상황 변동에 따라 군단 주력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수색대로 하여금 강릉과 대관령 남방까지 끊임없이 원거리 수색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동안 인접 제3군단이 전반적인 진출을 감행하기 위하여 전면에 대한 원거리 수색 공격을 단행함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제1군단장도 역시 1월 27일 수도사단장 송요찬 준장에게 장차 있을 군단 진출로를 타개하기 위한 수색 공격을 긴급히 지시하였다. 지시를 받은 수도사단장은 예하 제1기갑연대장 김동수 대령과 제26연대장 서정철 중령에게 즉시 각 연대별로 1개 대대를 차출하여 제1기갑연대는 대관령 남방 구산리로, 제26연대는 강릉으로 각각 수색 공격에 임할 것을 하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