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97)

평창선에 진출한 미 제17연대 제3대대는 1월 30일 미명 마차리로 철수하여 미 제31연대와 전투 정면을 교대하고 주천리(DS3525) 일대로 이동하였고, 제2, 제3대대는 장곡리(DS4018)과 연당리(DS4715)로 연하는 선상에 배치하였다. 이와 같이 미 제17연대와 교대한 미 제31연대는 제1대대를 영월 북방 1㎞ 지점 능동(DS5216)부근에, 제3대대를 마차리 서방 2㎞ 거리실 일대 진지에 각각 배치하였고, 미 제7사단 지휘소는 단양에서 제천으로, 미 제31연대 지휘소는 영월로 각각 이동 개설하였다. 이때 제3군단 예하 제7사단은 제8연대와 제3연대 제3대대를 영월 시내에 두고 마차리 동북방과 웅동(DS5123) 간에 배치한 제3연대 주력 중 제2대대를 태동에서 웅동에서 수색하게 하고 제1대대로서 창동(DS5632)을 공격하기 위하여 1월 30일 09:00부터 행동 개시 동일 14:15 창리 남방 2㎞ 지점 율치(DS5428)에서 잠복중인 적 소수를 발견 이 적을 격퇴하고 계속 진출 중이고 제5연대장은 예하 제6, 제11중대로서 하미리(DS6729)~가수리(DS6628)와 마하리(DS5926)에 각각 진출시켰다.
1월 31일 마차리와 주천리 방면에 진출한 미 제7사단 주력은 현진지 상에서 전면에 대한 수색활동을 계속 전개 중이며 더구나 미 제32연대 제2대대는 영월 남방 영춘리 부근 진지에서 마차리 서남 3㎞ 지점까지 이동하여 동 선상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마차리 동북방에서 진지를 편성 중인 제7사단은 제3연대 제1대대로 하여금 주력을 송치(DS5226)에 배치하고 그 중 1개 중대로서 율치로부터 창리를 향하여 계속 공격 전진 중이며 제2대대는 웅동에서, 제3대대는 영월에서 1월 31일 11:00를 기하여 각각 마차리에 이동하여 차기 작전을 대기하였다. 제8연대는 계속 영월과 덕포리에서 각 대대별로 집결하여 부대 정비에 임하고 있으며, 제5연대는 현진지에 변동없이 진지를 보강 중이고 다만 춘양에서 재편성 중인 제1대대는 1월 31일 21:00를 기하여 이동을 개시하였다.
그후부터 2월 1일까지 미 제32연대 제3대대는 거리실에서 평창까지 수색 전진하여 접적없이 일시 평창 시내에서 휴식한 후 거리실로 철수하였다. 그리고 제7사단의 주공부대인 제3연대는 제2대대로 하여금 제1대대의 창리 방면 공격을 지원하기 위하여 2월 1일 06:30부터 마차리에서 행동 개시, 제1대대 주역이 배치되어 있는 율치를 초월, 그 북방 4㎞ 지점 용천동(DS5331) 일대까지 진출하고, 그중 제7중대는 수색대와 같이 17일 14:00 창리까지 진출하여 수색을 감행한 결과, 창리 북방 고지에서 소수의 적이 있음을 시인하고 이날 18:00 원대에 복귀하였다. 이때 제5연대장은 춘양에서 노일리에 도착한 제1대대를 연대 예비대로 하였다.
2월 2일 거리실 선을 확보하고 있던 미 제31연대는 제3대대로 하여금 평창 남방 4㎞ 지점까지 진출시켰다. 이에 따라서 마차리로부터 후천에 이르는 선상을 확보한 제7사단도 사단장 김형일 준장의 지휘하 지휘소를 영월로 이동하고 2월 1일 율치 북방 2㎞ 지점까지 진출한 제3연대의 주력으로서 창리를 점령하고 평창 남방 4㎞까지 진출한 미 제31연대와 연계를 짓기 위하여 2월 2일 07:00부터 제2대대를 주공부대로 하고 제1대대를 조공 부대로 하여 율치 일대에서 공격을 개시 완강한 적의 저항을 받으면서 4㎞ 전진하여 이날 12;00 창리를 점령하고 계속 북방 723고지(DS5532)와 644고지(DS5428)를 점령한 후 동 선상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였다. 또한 제5, 제8연대도 현 선상에서 각각 공격 준비에 열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