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96)

이에 아 제3군단과 미 제7사단은 미 제10군단장 알몬드 소장의 작전계획에 의거 미 제17연대의 제1, 제2대대로 하여금 영월~제천 간의 차단 진지에서 패잔병을 소탕하게 하고, 1월 27일 07:00를 기하여 미 제17연대 제3대대로서 영월로부터 평창을 지향하고 공격을 개시, 도로의 장애물로 인하여 진출이 지지하였으나, 동일 16:00에 영월 북방 12㎞ 지점인 마차리에 진출하여 적 제9사단의 근거지를 점령하고 계속 북상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였다. 이에 따라서 아 제3군단장 유재흥 소장은 제7사단을 공격 제대로 하여 인접 미 제7사단과 호응하게 하였다.
제7사단장 김형일 준장은 예하 제3연대를 주공격 부대로 하고 제5, 제8연대를 양공 부대로 하였다. 제3연대는 1월 26일 미 제10군단의 일부 전투 지경을 침범하였으나, 미 제17연대의 진출로 인하여 동 연대 후방 견제 방어선을 유지하고자 이동하지 않고, 1월 27일에 이르기까지 진지 보강에 주력하였으며, 제5연대는 현진지를 보강하면서 지휘소를 의림길에서 또다시 노일리로 이동하였다. 제8연대는 제3대대가 확보하고 있는 주진지를 보강하면서 제2대대를 영월로 이동시켜 차기 작전에 완벽을 기하였다. 그리고 제23연대는 옥천동에서 제3군단 측방 경계 임무가 해소되기 때문에, 제3군단장 유재흥 소장은 1월 27일 12:00 부로 제7사단 배속을 해제시키고, 원대복귀와 동시 녹전리에 집결시켰다.
1월 27일 마차리에 진출한 미 제7사단 제17연대 제3대대는 계속 북진하여 1월 28일 미명에는 연덕리에 이르렀고 동 연대 주력은 석교리 및 일곡 부근 진지에서 아 제3군단과 연계를 짓고 그 후방 영춘(DS5404)과 여천리(DR4497)에 있는 사단 주력은 후방 경계에 임하고 있었다. 아 제3연대장은 예비대로서 영월에 주둔하고 있는 제1대대로서 미 제17연대 제1대대 진출선 측방을 엄호하기 위하여 1월 28일 07:00부터 행동 개시, 동일 12:00 마차리에 도착하여 동측방에 잠복한 소수의 적을 구축 후 마차리에 진지를 편성하여 미 제17연대의 측방을 엄호하였으며, 제2대대를 발침산(DS5317)~제하리(DS5118) 간에 방어선을 유지하게 하고 제3대대를 이날 16:00 2개 소대만을 동동(DS5418)~592고지(DS5518)에 두고 주력은 영월로 철수하게 하여 차기 작전에 대비하였다. 제8연대장은 제3대대가 확보 중인 완택산 두평 간의 진지를 1월 28일 07:30에 철수하여 동일 19:00 덕포리로 이동하여 차기 작전에 대비하였다.
1월 28일 마차리, 연덕 선에 진출한 미 제7사단 제17연대 제3대대는 1월 29일 평창 서남방 3㎞ 지점까지 진출하여 평창 시내를 측방으로부터 계속 공격 중이며, 일부 수색대로서 평창 서방까지 진출시켜 적에 대한 위협을 가하였다. 그리고 미 제31연대 주력은 1월 29일 17:00 아 제3연대 제2대대와 발침산 진지를 배치 교대하였다. 교대를 완료한 아 제3연대 제2대대는 즉시 마차리 부근 웅동으로 진출하여 제1대대와 연계를 짓고 연대 전투 지경을 강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