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101)

제3장 오산 선에서의 재반격과 38선 진출
제1절 일반 상황

  1. 적의 상황
    단기 4283년 12월 말 38선 일대에 집결을 완료한 적의 병력은 중공군 약 17만, 괴뢰군 약 6만, 합계 23만 명이었다.
    이 적들은 동년 12월 31일 자정을 기하여 일제히 38선 돌파 작전을 개시하였으며, 적은 6.25전란의 개전 초기와 마찬가지로 주공을 동두천~의정부 방면으로 하고 조공은 개성~문산선, 화천~춘천선, 인제~현리선으로 각각 공격하여 왔다. 중공군은 의정부선과 춘천선의 공격을 담당하였고, 괴뢰군은 문산선, 현리선을 담당 공격하여 왔던 것이다.
    문산 방면으로부터 남하한 괴뢰군 제1군단은 임진강을 도하하여 단기 4284년 1월 4일 서울에 침입하였고, 이에 앞서 영국군 제27여단은 1월 3일 격전 끝에 의정부를 포기한 후 철수하고 1월 4일 새벽 후미 부대로서 한강을 도하한 다음 부교를 폭파해 버렸다.
    서울에 침입한 적은 일부 병력을 인천으로, 주력은 수원으로 남하하였으며, 1월 7일에는 괴뢰군 선두 부대와 중공군 일부 병력이 수원 시내에 침입하였고, 다음날 1월 8일에는 오산으로 진출하였다.
    그리고 인제 지구에서 현리선으로 남진한 괴뢰군 제2군단은 38선을 돌파한 후 단기 4284년 1월 15일 평창, 영월을 점령한 다음 남대리 방면으로 남하하여 중앙선을 차단하고 계속 산악지대로 남하하였다. 그러나 동 군단은 각 처에서 아군의 지연작전에 의하여 포착섬멸 당하고 식량 부족과 동상에 심대한 고통을 느끼면서 겨우 제10사단 일부가 청송, 의성 간을 통과하여 1월 25일 보현산까지 남하하는데 성공하여 아군 후방 진지의 교란과 유격전을 기도하고 있었다. 또한 춘천선으로 남하한 적 중공군은 1월 6일 홍천을 경유한 후 원주로 남하하였고, 괴뢰군 제5군단이 그 뒤를 따라 남하하여 왔다.
    1월 8일 미 제10군단 소속의 미 제2사단은 원주를 포기하였으나, 이튿날인 9일부터 10일에 걸쳐 소규모의 반격을 감행하였는데 비록 그것은 소규모적이었으나 철수작전에 종지부를 찍는 최초의 반격이었다. 그리하여 단기 4284년 1월 16일 아군 및 국련군이 오산~장호원~제천~영월~삼척선에서 철수작전을 완료하고 총반격 작전의 준비를 완료하였을 무렵에 있어서의 적의 상황은 서부전선을 담당한 국련군 제1군단 전면인 오산~수원 방면에 중공군 제50군, 제40군의 2개 군이 진지를 점령하여 아군과 대치하고 있었고, 그 후방 서울 방면에 괴뢰군 제1군단이 산재하고 있었다. 또한 중부 전선을 담당한 국련군 제9사단 전면인 진천~원주 방면에는 중공군 제42군, 제38군, 제39군의 3개 군단이 아군과 대치하고 있었으며, 국련군 제10군단 전면인 제천~여주 방면에는 중공군 제37군이 배치되어 아군과 대치하고 그 후방 춘천 방면에 괴뢰군 제5군단이 배비되어 있었다.
    한편, 아 국군이 담당한 중동부 및 동부전선에서는 제1군단 전면에 괴뢰군 제15사단 및 제69여단이 행동 중이고 아군 제3군단 전면에서는 괴뢰군 제2, 제9, 제31사단의 3개 사단이 행동 중이었는데 이러한 부대들은 모두 괴뢰군 제2군단의 소속 부대들이었다.(38선으로부터 오산~삼척선 철수 상황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