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100)

그리고 1월 29일 구정리 방면에 진출하여 사단 좌익 전초 임무와 수색 임무를 계속 중인 기갑연대 제1대대는 1월 31일 07:00 제3중대가 수색 차 진출한 구산리 북방 1㎞ 지점 왕제산(DS8574)에서 남하하는 약 1개 대대의 적과 조우하여 이 적을 공격하였다. 아 제3중대에게 공격을 받은 적은 불의에 당하는 일이라 전의를 상실하고 아 대대 주력이 배치된 구정리 좌측방으로 이동하면서 아군에게 위협을 가하였다.
이에 기갑연대 제1대대 주력은 이날 12:00를 기하여 구산리 남방 4㎞ 지점 세지동(DS8570)에 전진한 후 오봉산(DS8372)~오봉리(DS8473)~구산리(DS8573)~상해산(DS8872) 일대에 배치하였고, 예하 제1중대로 하여금 2월 1일 12:00 왕제산을 공격하여 접적 없이 이 고지를 점령하였다. 그 후 동 대대는 연대장 김동수 대령의 명에 의하여 2월 2일 12:00 동 지점을 철수한 후 사단 전진에 따르는 노상 요지 포당령(捕唐嶺)(DS8758)에 전진하여 2월 3일 진출하는 사단 주력의 엄호 임무를 담당하였다.
이와 같이 1월 26일 이해 영월, 삼척 선에서 수색 진출을 계속한 아군은 각 사단 선발대가 평창~하진부리~강릉 선까지 진출하여 각각 주력의 진출을 엄호하기 위한 경계 임무를 담당하였다. 이에 따라서 아군은 Q선을 점령하기 위하여 2월 3일 미명부터 일제히 진출을 개시하였다.
좌측으로부터 미 제10군단의 우익부대인 미 제7사단은 주천리와 마차리에서 평창 방면으로, 아 제7사단은 아 제3군단과 미 제10군단의 제한점인 마차리로부터 그 동방 후천에 이르는 선상에서 창리 북방으로, 제9사단은 후천으로부터 제3군단과 제1군단의 제한점인 골지리에 이르는 선상에서 하진부리로, 수도사단은 제일 좌측 경계선인 골지리로부터 동해안에 이르는 선상에서 대관령 강릉 방면으로 각각 진출하였고, 따라서 제3군단의 지휘소도 영월로 이동하게 되니 연 1개월 간에 걸친 본 지구 전투도 이로써 종결을 지었다.(이상 부도 제2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