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내일 오전에 만나는 건가 아닌 건가, 아직까지 별 이야기가 없네. 지난번 상황으로 미리 유추해보면 내일 오전 일찍 연락이 오거나 새벽에 연락이 올 거 같은데... 흠...
또다시 기다림의 미학이란 말을 기억해야 하는 것일까? 정신 없었던 지난주가 지나가고, 이번주는 지난주보다는 좀 여유롭고 단조로운 생활패턴이 예상 되는데, 그럼에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내 성격상 일단 대부분의 일들을 미리미리 준비하는 그런 경우이기에, 사서 미리 일들을 하고 있기는 한데 (가능한 경우의 수들에 대해 대비), 뭔가 점점 여유가 없어져가고 있어서 많이 아쉽다.
뭐 세상사가 다 그런거긴 한데, 이번 주말에는 갑자기 존재에 대한 심각한 절망과 공포감이 들어 또다시 밤잠을 설치던 그런 사건이 있었다.
시작이 있는 것은 끝이 있다. 이 단순한 명제를 존재에 적용하는 순간, 더 이상 단순하지 않다.
나라는 존재는 언제 시작되었고, 그렇다면 어디서 끝나는가. 이 질문은 설명 이전에, 먼저 공포로 다가온다.
순환을 상정하면 이 공포는 잠시 유예될 수 있다. 여기에 ‘신’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 서사는 더 매끄러워진다.
태초의 존재를 신이라 두면, 그로부터 분화된 우리는 결국 그 일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소멸이란, 단절이 아니라 근원으로의 회귀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설명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단지 전체의 층위로 이동시킬 뿐이다. 전체가 지속된다는 사실은, ‘나’라는 경험이 지속된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나는 단 한 번의 연속성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연속성은, 어느 지점에서든 끊어질 수 있다.
결국 질문은 남는다. 나는 사라지는가.
그리고 그 물음은, 여전히 차갑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됬을 때부터 나를,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도 괴롭힐 이 질문은 심심할 때마다 나에게 찾아와 내 머릿속을 뒤집어 놓는다. 학창 시절에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자연과학과 철학을 공부했으나, 여러 다른 이론들과 상상들만 접할 뿐, 근본적인,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알지도 못하겠고 공포로부터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다.
어렸을 적의 추억이 있던 곳에 출장을 갔다 와서 일까? 어렸을 적의 악몽 주제가 다시 나를 찾아와 늦은 밤 잠 못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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