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라면 코너에서 본 매대 전쟁

어제저녁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저녁이라기에는 늦은 시각이었고, 무언가를 살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라면 코너 앞에서 한참 서 있었습니다.

라면 코너의 위쪽 두 칸은 신상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포장이 화려하고 글자가 큽니다. POS 베스트셀러 스티커는 거기 안 붙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는 그 아래 칸에 있습니다. 포장이 오래된 디자인이고 글자도 작습니다.

신상은 위에서 눈을 끌고, 베스트셀러는 중간에서 손을 받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신상 두 칸의 라면들은 매주 바뀌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한 달 전에 본 신상은 오늘 자리에 없습니다. 그 자리는 신상의 자리지 특정 라면의 자리가 아닙니다. 중간 칸의 베스트셀러들은 한참째 같은 자리입니다. 매대의 신상 칸에는 한 번도 올라간 적 없는 라면이 그 자리에서 5 년째 팔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풍경을 보고 있다가 portfolio 가 잠깐 떠올랐습니다.

신상 칸 라면 같은 사이트들이 있습니다. 출시 때 잠깐 노출을 받고 한 달이 지나면 시야 밖으로 사라지는 사이트들. 매대 중간 칸 같은 사이트들도 있습니다. 폭발은 없는데 매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만큼 들어오는 사이트들.

생각이 거기까지 가서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라면을 사러 온 게 아니라 라면 매대를 분석하러 와 있었습니다. 30 분 가까이 그 앞에서 있다가, 정작 사간 건 삼각김밥이었습니다. 이게 직업병인지 휴식 시간을 잘못 쓰는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집에 와서 매대 사진을 한 장 찍어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그러다 그 생각도 직업병의 일종이라는 점을 깨닫고 그만뒀습니다. 매대 운영을 잘하는 사람은 portfolio 운영을 잘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적으면서도 이게 정말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고, 어제 본 매대가 그저 매대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